[시론] 법치주의의 위기


촛불집회는 많은 장면들을 대한민국의 역사에 새기고 있지만, 그 중 빠뜨릴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바로 ‘관계장관 담화’이다. 지난 6월 29일, 이른바 관계장관들이 좌우에 늘어선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엄정하고 단호”한 법집행을 강조하는 모습이 TV화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이것은 7080에게는 매우 낯익은 ‘추억의 장면’이다. 지난 20년 동안은 보기 어려웠던, 하지만 그 이전의 권위주의정권 시절에는 자주 접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훗날 내란목적살인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은 그 시절의 대통령이 TV에 나와 거듭 강조한 것도 다름아닌 ‘법대로’였다.

하지만 그 ‘법대로’의 시대는, 거리를 지나가는 국민들의 가방을 경찰이 일상적으로 뒤지고, 정부를 비판하는 일체의 목소리를 검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기계적으로 발부했던 시대, 국가기관이 나서서 국민들을 감시하고 때리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했던 시대이다. 헌법은 ‘새법’의 반대말이고, 사법부는 ‘생법부’의 반대말이라며 법이 야유를 받았던 시대, "국민의 검찰"보다는 ‘권력의 시녀’가 “민중의 지팡이”보다는 ‘민중의 몽둥이’가 더 설득력을 가졌던 시대이다. 그래서 그 시절을 ‘법치주의의 시대’라고 평가하는 법학자는 없다.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 속에서, 특히 검찰과 경찰은 그 어둠의 시대를 벗어난 듯이 보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되고,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이 금지되고, 비록 그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는 특별검사도 임명되었다. 심지어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되받게 만들 정도로 젊은 검사들이 ‘기개’를 발휘한 일까지 있었다. 또한 경찰도 그물창을 걷어내고, 포돌이를 만들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는 노력까지 기울였다. 그래서 지난 정부 말에 이르러서는 검찰과 경찰을 그 어두운 과거와 연결지워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법은 조용하면서도 친근하게 국민들 옆에 자리 잡았고, 그래서 헌법 제1조는 법전에서 솟아나와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정부에 들어서 법집행기관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촛불을 든 국민들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국제인권단체의 조사대상이 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경찰은 지난 정부 내내 일상적으로 넘실댔던 ‘정권퇴진’이라는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종교인들까지도 사법처리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신문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대규모 수사팀까지 꾸려 중범죄수사에나 사용되는 출국금지조치를 남발하는 검찰이 그 신문의 부수 조작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비판한 방송 보도에 대해서는 취재 원본까지 내놓으라고 채근하면서, 미국 쇠고기를 선전하기 위해 사진을 조작한 신문 보도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한다. 그래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 공감”한다고 대답한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되는 지경이다.

법치주의는 법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변덕스러워 믿기 어려운 사람보다는 명확하여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법에 의지해야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류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만들어낸 원리이다. 그래서 법에 따라야 하는 것은 국민들보다는 그 국민들의 행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 그 중에서도 특히 법집행기관이다. 그리고 그 법집행기관이 따라야 할 법의 핵심이 ‘같은 것은 같게, 같지 않은 것은 같지 않게 다루라’라는 요청이다.

법집행기관이 법에 따르지 않을 때, 같은 것을 다르게 다루면서 ‘법대로’를 외칠 때, 그 때야말로 법치주의의 위기이다. 행복은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무서운 얼굴로 으르대기만 하는 법에 대해 국민들은 등을 돌리게 된다. 그 국민들을 다시 돌아서게 만드는 데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 20년 동안의 노력을 단 5개월 만에 물거품으로 돌리려 하는가?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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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2008.7.29